삶과 죽음

중환자실에 환자가 한 명 있다


인생의 모든 모습을 듣지는 못했지만, 험난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지도 않았고 모든 것에 대충대충이었고 다른 모든 이들을 적대적으로 대하며 산 사람이다. 어렸을 때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성인이 되어선 당뇨로 오른쪽 다리를 잘랐으며 만성신부전으로 투석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구청의 사회사업사가 방문하면 집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집 안에 음식이 썩어가고 쓰레기가 가득 쌓여도 그냥 그대로 살았다. 그냥 그렇고 그런 인생을 산 사람이다.

흔히 말해 사회 부적응자.

아마도 이렇게 부르는게 그 환자를 부르기 가장 쉬운 말일 것이다.

응급실에 처음 방문한 것은 혈변으로 왔고 직장이 파열된 것을 확인한 후 대장을 잘라내고 항문 주머니를 새로 만들어줬다. 끝임없는 치료에 대한 비협조와 폭언, 위협, 그리고 단순한 것에도 참지 못하는 공격성을 보여줬다. 결국에는 전동 휠체어로 간호사 한 명의 발등을 밟아버렸고 자퇴하고 퇴원했다.

수술직후부터 발생한 황달에 대해 뚜렷한 원인도 없었으며, 끝도 없이 상승하다 자퇴를 해버렸다. 누가 봐도 사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배가 아프다며 응급실에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위장관 출혈. 내시경 두 번과 혈관조영술 한 번을 했으며 결국 십이지장의 출혈을 완전히 막지 못하고 약물과 수혈로 버티고 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산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청색 LED의 개발자 나카무라 교수는 연구의 원동력이 '분노' 였다고 한다. 삼류 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도 받지 못한 자신을 향한 사회의 무시와 조롱. 그리고 그 분노를 원동력으로 청색 LED를 개발해 노벨상 수상 과학자가 되었다.
같은 시기를 살아온 이 환자는 아버지가 마약 판매상이었다곤 하나 더 이상의 변화와 노력을 포기하고 되는대로 살다 병원을 전전하게 되었고, 같은 시기의 나는 더 이상의 논문 작성에 무리가 있다고 느껴 논문 쓰기를 포기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의 삶의 형태가 있고 우리가 느끼는 '최선'이라는 것에 맞춰서 살고 있다.

가끔 시간이 될 때 나도 내 자신을 돌아보지만 난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았을까?
그냥 하루하루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이제 내년이면 만 40세가 되고 적어도 인생의 절반을 산 것이 된다. 40년 동안 누군가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강해졌고, 누군가는 인생을 포기했으며, 또 누군가는 이렇게 대충 살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인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것은 어차피 이렇게든 저렇게든 그냥 흐르는 것이고 우리중 상당수는 이렇게 인생을 살다 떠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역시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해도 결국에는 어디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스러져 갈 거라 생각한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인생이다.

다만, 지금까지 내 인생을 돌아보며 바라는 단 한가지 부분은, 죽기전에 꼭 화성에 가보고 싶다는 것이고 죽은 후에 사람들이 웃으며 날 보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가족과도 친하지 않고 대인관계조차도 그다지 원활하지 않은 내가 이런걸 바라는 것이 무리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까지 웃으며 떠나고 싶다. 어차피 단 한번의 인생이었지만 나 하나라는 존재가 인류에 미미하나마 중요한 영향을 끼쳤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너무 큰 바램일까? 나도 잘은 모르겠다. 다만 나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작게나마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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